1. 물건이 아닌 순간에 투자한다는 것의 의미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삶은 '가지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좋은 집, 좋은 차, 최신 스마트폰, 명품 가방. 하지만 그 소유의 순간은 생각보다 짧은 만족을 준다. 새 물건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은 곧 익숙함으로 변하고, 익숙함은 다시 무감각이 된다. 결국 우리는 더 새로운 것, 더 비싼 것을 찾게 되고, 그 반복은 소비 피로로 이어진다.
반면, 경험에 투자하는 소비는 다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간 소박한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공연, 오랫동안 가고 싶던 강의를 듣는 순간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조금 더 넓게 만들어준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꼭 해외여행을 가거나 수백만 원짜리 워크숍에 참여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매일 가던 동네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장소를 걷는 산책, 책을 한 권 끝까지 다 읽는 도전, 혹은 나를 위한 특별한 요리를 해보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경험은 흔적을 남긴다. 물건은 언젠가 망가지고 사라지지만, 경험은 우리의 내면에 남아 생각과 시야를 바꾸고 감정을 자극한다. 특히 경험을 통한 소비는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후회도 적다.
‘소유’가 끝을 위해 존재한다면, ‘경험’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소비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를 성장시키고, 관계를 깊게 하며, 더 단단한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이제 소비의 우선순위를 바꿔볼 시간이다.
2. 왜 경험 소비가 덜 후회되는가?
충동적인 물건 구매를 한 뒤 후회해 본 적,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할인 마감 시간에 쫓겨 구매 버튼을 누르고 나서 마음이 무거워진다든지, 택배 상자를 열고 나니 기대했던 감정이 들지 않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런 후회는 주로 '비용 대비 만족도'가 낮을 때 나타난다.
그런데 경험 소비는 다르다. 그것이 다소 실패한 경험이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경험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예컨대, 기대했던 전시가 조금 실망스러웠다고 해도 친구와 나눈 대화, 전시장 앞 카페에서의 시간, 새로운 동네 풍경에서 오는 자극 등은 여전히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또한, 경험 소비는 ‘지속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물건보다는 경험을 더 자주, 더 길게 이야기한다. “지난달에 다녀온 여행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이야기는 “내가 새로 산 청바지가 말이지”보다 훨씬 더 오래, 더 깊이 공감을 불러온다.
심리학자들도 말한다. 소유보다 경험이 사람에게 더 깊은 행복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정체성에 더 가까운 소비이기 때문이라고. 경험은 나의 가치관,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나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느냐’가 곧 ‘나는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 소비는 그 자체로 후회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나를 위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소비로 인한 죄책감 대신, ‘살아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3. 경험 중심의 소비로 전환하는 실천 팁
‘경험에 투자하는 소비를 하자’는 말은 좋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면 막막할 수 있다. 여기서는 현실적인 실천 팁을 몇 가지 제안해보자.
매월 ‘경험 예산’을 따로 정하자.
가령 월 10만 원을 물건이 아닌 경험에 쓰기로 정해두는 것이다. 이 돈은 무조건 강연, 전시, 맛집, 문화생활, 자기계발 등에만 쓴다. 돈을 쓸 때 ‘기억에 남을 만한가?’를 묻는 기준을 세워보는 것도 좋다.
사기 전에 '대안 경험 리스트'를 꺼내보기.
새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대신 해볼 수 있는 경험을 떠올려보자. 예를 들어, 옷 한 벌 값으로 친구와 전시 관람 후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마음에 드는 취미 클래스에 등록할 수도 있다.
경험 기록장 만들기.
소소한 경험을 기록해두는 습관을 들이자. 사진을 찍고, 그날 느꼈던 감정을 짧게 써두기만 해도 나중에 다시 꺼내볼 수 있다. 이건 곧 ‘내가 어떤 경험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해준다.
함께하는 경험을 늘리기.
혼자 하는 소비보다 여럿이 함께 하는 경험은 관계까지 풍요롭게 해준다. 가족과의 공예 클래스, 연인과의 요리 데이트, 친구들과의 테마 여행 등은 소비 이상의 의미를 준다.
이처럼 소유 중심 소비에서 경험 중심 소비로 전환하는 건 작은 습관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오늘 하루, 소비가 아닌 경험을 선택해보는 것. 그 작고 단순한 선택이 누적되어 진짜 의미 있는 삶으로 이어진다.
경험 소비가 바꾼 삶의 결에 대해서 경험 중심 소비를 의식적으로 실천한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내 삶에는 생각보다 큰 변화가 일어났다. 무엇보다,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예전엔 돈을 쓰는 만큼 무엇인가 ‘내 것이 된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예전의 나는 새로운 옷이나 아이템을 살 때만큼은 뭔가 나 자신을 챙기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만족감은 금세 사라졌다. 반면 최근엔 여행을 다녀온 후, 혹은 친구와 뜻깊은 대화를 나눈 날, 혼자 미술관에 다녀온 날 같은 순간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다.
물건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것이지만, 경험은 필요할 때 꺼내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삶의 감정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시켜주는 은은한 힘이 된다.
또한, 돈을 쓰는 데 있어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새로운 가방보다는 강연 한 편, 옷 한 벌 대신 하루 캠핑을 택하게 되었고,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것’, 혹은 ‘관계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내가 이만큼 살아냈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건은 지나고 나면 무엇을 샀는지조차 잊어버리기 쉬운데, 경험은 삶의 페이지를 채워주는 ‘사건’이 된다. 그 사건들은 곧 내 삶의 이야기가 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해주는 힌트가 된다.
마무리 멘트 제안:
더 이상 갖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경험이 쌓이면, 나는 점점 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유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순간에 투자하는 소비. 그것이 결국 나다운 삶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